第十九回 (社) 韓國漢詩協會
醴泉支會 漢詩 紙上白日場 開催要綱
1, 時下 孟夏之節에 尊體錦安하심을 仰祝하나이다.
就白 (社)韓國漢詩協會 醴泉支會는 梧軒 原州邊公 得龍선생을 追慕하는 漢詩 紙上白日場을 開催하오니 江湖 諸賢께서는 많은 參加를 부탁하오며 隣近의 漢詩 同好人께 連絡하여 同參하여 주시면 感謝 하겠습니다.
1) 詩題 : 追慕 (原州邊氏) 梧軒公 得龍 先生
2) 押韻 : 東, 同, 功, 中. 窮
3) 投稿磨勘日 : 2024年 9月 25日. (期日內 到着分에 限함) ※ 팩스접수 불가
4) 投稿處 : 경북 예천군 예천읍 중앙로 42 유경팰리스303호 (郵 36828)
事務局長 尹錫明 010-7727-2165
5) 考選基準 : 違題 違簾 對不定 疊字 疊意 蜂腰 鶴膝 等 慣例에 準함
6) 考選委員 : 斯界 大家 4人
7) 賞金內譯 : 壯元 : 1명 1,000,000원
次上 : 2명 各 500,000원
次下 : 3명 各300,000원
參榜 : 15명 各150,000원
佳作 : 40명 各100,000원
8) 入賞發表 : 2024년 9월 中 (入賞者 個別通報 함)
9) 施賞 : 10月中
10) 主催 : 醴泉郡廳,
主管 : (社) 韓國漢詩協會 醴泉支會
後援 : 醴泉文化院, 醴泉鄕校, 龍宮鄕校, 原州邊氏梧軒公派宗會
10) 詩集발간 및 送付 : 詩稿紙 提出者에 限하여 送付함.
※ 接受된 詩稿는 一切 返還하지 않습니다.
以前 壯元 受賞者는 贊助詩로 代替합니다.(3년간)
添附 : 漢詩作詩 參考資料 : 1部
漢詩作 詩稿紙 : 1部 끝.
서기 2024년 7월 일
(社) 韓國漢詩協會 醴泉支會長 朴 元 哉 拜上
梧軒 原州邊公 得龍 先生 行績
○ 변득용 (邊得龍) (1721-1799)
先生의 諱는 得龍이고 字는 觀汝이며 原州人이다. 號는 梧軒이시다. 公의 性稟은 밝고 純粹하며 端正하고 嚴格하며, 慈愛롭고 어질며 和平하고, 端雅하여 임금님의 恩寵을 받으셨으며, 朝廷의 期待를 한몸에 받으셨다.
乙酉年91765 영조41) 文科에 及第하고, 承政院 副正字 弘文館
假注書 刑曹佐郎 奉常寺僉正 春秋館記事官 兵曹佐郎 禮曹佐郎
成均館直講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에
올라 御定人瑞錄에 이름이 들었다.
始祖 大隱邊安烈은 元나라에서 武科에 壯元及第하여, 刑部尙書로 恭愍王과 魯國公主를 陪從하여, 高麗로 還國하여, 北虜南倭擊退에 큰 功勳을 세워 壁上三韓上重大匡門下賛成事 겸 判禮儀司事
都體察使 領三司事 原川府院君에 封해졌으며, 原州로 賜鄕을 받고, 原州邊氏 始祖가 되셨다.
高祖의 諱는 欽이며 義禁府 都事였고 曾祖의 諱는 胤宗인대 贈嘉善大夫行龍驤衛副護軍이시며 祖父의 諱는 之斗며 號는 忘村이며 齋陵參奉을 除授받았으나 奉任하지 않고 贈嘉善大夫承政院承旨行龍驤衛副護軍이며 學問이 篤實하고 稟行이 方正하였으며 醴泉의 鼎山書院設立을 疏請하여 賜額書院의 恩典을 받았다았다.
考의 諱는 有達이며 字는 齊淑이다 正祖 20년 贈 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摠管이며 贈 貞夫人 慶州李씨 參奉 華翊의 女이다 梧軒公은 三男三女 中 三男으로 태어났으며, 英祖41년에 文科에 及第하여 王이 敬軒堂에서 行事하실 때 六承旨와 여러 記事官과 封墓家를 받는 三政丞과 六朝 判書와 參判官과 京官職 등 重要 인사가 出座한 자리에 入侍하여 行禮를 하였다
英廟實錄헤 근거하면 太廟奠禮를 예습할 때에 왕이 感懷가 있어서 오늘 儀習을 하니 追慕의 마음이 懇切해서 太廟을 바라보니 눈물이 수건을 적신다 라는 글귀를 지으니 정승 파서인 현관들이 한 句節씩 지으니 모두가 21명이라 公도 養官職으로서 ̏寶山彌高慕益切 心香黙炷整衣巾 임금님의 心算이 높으시고 追慕心이 더욱 懇切하시어 衣服을 整備하시고 마음으로 香을 피우고 말없이 심지를 태운다 ̋ 라고 했으니 그 당시 忠臣間의 孝弟心情을 가늠할 수 있다.
公은 和平하고 瑞雅하며 임금의 恩寵를 받으며 文章 또한 成就되어 朝庭의 期待를 한몸에 받은 名臣으로 英祖 41년부터 正祖 19년 까지 33년간 여러 官職을 修行하시면서 忠誠을 다하여 內官職을 修行 하시면서 王의 근거리어서 奉職을 수햏하시면서 外官職은 한번도 나가지 않으셨다, 孝誠 또한 至極 하여 先祖님은 물론 高祖父, 曾祖父, 祖父, 考까지 贈職을 賦與받아 家門을 빛내었다.
公이 修身齊家를 하고 20년이 지나서 落鄕 後 悠悠自適하게 風流를 읊고 餘興을 남긴 글은 아름다운 비단 상자에서 나온 玉같은 글이라 짐작 할 수 있으나, 保存하지 못하였으니 孔子님이 歎息하신 杞宋의 자취가 된 것은 醴泉士林만의 歎息이 아니고 이웃鄕의 선비들도 慨歎할 일이니, 황차 本孫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公은 1男 1女를 두시어 자는 益喆이고 사위는 聞韶士人 金喆運이다, 묘소는 醴泉郡 龍門面 九溪里 壬座山에 配位와 함께 모셔저 있으며, 神道碑文은 成均館副館長 安東人 權奇甲任이 撰하시고,
碑文글씨는 權昌倫任이 寫書하였다. 後孫들이 至極 情性으로 보살피고 있으며 鄕內에 稱頌이 大壇하다.